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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1년, 더 커진 불확실성
천안함 1년, 더 커진 불확실성
[Corée]
김종대/군사전문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info@ilemonde.com

지난해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서남단의 어두운 수중 속에서 발생한 강력한 충격으로 천안함은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우리의 직관과 상식을 완전히 초월한 이 뜻밖의 사건은 한국전쟁 이래 60여 년 만의 큰 군사적 충격이었다. 이 사건 이후 우리나라 서북 5도를 둘러싼 북방한계선(NLL)에서 남북 간에 공존과 협력의 기회는 점점 더 멀어졌고, 오직 대결과 긴장으로 치닫는 위험한 상황이 전개됐다. 8개월 뒤인 11월 23일에 일어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변화된 남북 간 분쟁의 양상이 구체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또 한 번의 안보 위기였다. 그 뒤, 이제는 남과 북이 서북 해역을 둘러싸고 또 다른 결전을 준비하는 총체적 위기 구조가 일상화되고 있다.

서해가 ‘생명의 바다’에서 ‘죽음의 바다’로 변한 배경에는 천안함 이후 남북 간에 분쟁의 원칙과 양상이 근원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천안함이 북한의 신형 잠수정이 발사한 중어뢰에 피폭된 것인지에는 의문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후 남북 군사 정세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전제에 따라 조성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제는 대결적 구조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천안함 이전에도 NLL 인근에서 남북 간에 국지적 충돌이 간헐적으로 발생했지만 이는 천안함 사건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과거의 분쟁은 충분한 경고 시간과 함께 제한적으로 무력이 행사된 저강도 교전이었다. 1999년의 제1차 연평해전과 2002년의 제2차 연평해전은 며칠 전부터 가파른 대치 국면이 조성되면서 충돌의 사전 징후가 있었고, 우리가 전투준비 태세를 갖춘 상황에서 일어났다. 다만 제2차 연평해전의 경우 북의 경비정이 예기치 않게 포를 발사해 우리 쪽에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이마저도 당시 정보사령부에서 북한의 도발 징후를 포착했다. 우리가 좀더 지혜롭게 대처했다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여기에다 군이 전투가 발생하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전투 의지를 고취시키면서 현장 지휘관의 ‘공명심’도 높아졌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기 4개월 전인 2009년 11월 해군 작전사령관은 우리 함정으로 하여금 NLL을 2.2km 월선한 북한 함정에 3분간 4960발의 총·폭탄을 퍼붓게 했다. 교전 의지를 상실한 적에 대해 한 함정의 포탄을 모두 소비한 과도한 작전은 작전 지휘관의 전승에 대한 갈망과 공명심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교전이었다. 실제로 군은 3분간 교전을 하고 ‘대청해전’이라며 대대적으로 승전을 축하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분쟁의 원칙과 양상, 근본적 변화

대청해전 이후 세심하게 북한의 위협을 관리해야 했으나 북한의 현장 지휘관을 ‘패장’으로 뚜렷이 인식시키는 것은 전시에도 자제해야 했다. 결국 주요 지휘관들의 공명심이 맨얼굴로 드러나면서 군이 남북관계 전반을 주도하는 위험한 형국으로 흘렀다. 북한이 해안포를 통해 남쪽의 군사행동을 견제하겠다는 방침은 이미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인 지난해 1월에 정해졌던 것이다. 1월 27일에는 NLL을 향해 사격훈련을 강행했다.

   
▲ <연평도>, 2011-이종찬
그러나 천안함 사건 당시의 백령도 서남단은 교전이 발생했던 바다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조용했고, 안전한 장소였다. 일부 군 위성사진과 군 내부의 문자망에 북한 잠수함의 이동 정보가 있었지만 이를 근거로 대잠작전을 준비하기에는 결정적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북한에 신형 잠수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군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고, 설령 그런 잠수함이 존재하더라도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아 비좁은 이동로밖에 확보되지 않는 해역에서 대잠작전은 고려할 필요조차 없었다. 사건이 발생한 날 천안함은 백령도를 엄폐물로 삼아 북한의 해안포 위협을 회피하는 기동을 하다가 거기에서 최후를 맞았다.

사전 경고나 징후가 없었다는 사실은 이 해역에서 기계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안보가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더 많은 상상력과 직관에 의존하는 새로운 대비 태세가 요구된다는 교훈으로 이어졌다. 즉 서북 해역에서 북한의 위협이 신형 ‘스텔스 잠수함’을 포함한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됨으로써, 읽어도 읽히지 않고 계산하려고 해도 계산되지 않는 새로운 전장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고립된 해역에서 우리 작전의 최고 지휘부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현장 지휘관의 판단만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작전 환경이 출현했다. 과거의 재래식 분쟁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예측 불허, 기계적 수단 무의미

이런 충격적인 교훈은 남과 북이 각기 군사적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경쟁에 더욱 몰입하도록 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겪으면서 우리 군은 이 해역에서의 전투준비 태세를 향상시키기 위한 각종 신형 무기와 병력을 증강했다. 서북 도서를 전략적 요충지로 변모시키기 시작했다. 향후 충돌이 발생할 때 우리의 초계함과 구축함, F15K 전투기, 유도탄을 동원한 지·해·공 합동작전도 구상하고 있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북을 제압하겠다는 구상은 천안함 사건 발생 훨씬 이전인 2009년 2월에 이상희 국방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군사지침이다. 천안함 사건을 통해 그 구상에 더욱 무게가 실리면서, 최근에는 청와대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가 좀더 신속하게 북을 제압할 수 있는 ‘능동적 억제’ 논리를 개발해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를 위해 미국제 스텔스 전투기도 도입할 것이다.

북한은 군의 최고 수뇌부가 서북 해역의 군 지휘관으로 부임하고 공기부양정, 신형 어뢰정, 장사정포를 서둘러 증강했다. 북한은 평양으로 통하는 전략적 관문인 해주와 남포를 마주한 서해 바다에서 절대 군사적 주도권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해 1월 김격식 북한군 총참모장을 해주를 관할하는 4군단장으로 내려보냈고,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해주에서 북한 특수부대와 상륙 특수부대가 참여하는 지·해·공 합동훈련을 직접 참관했다. 여기에서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남북은 군사충돌을 도모하는 제반 여건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위험한 군사 정세에서 천안함 사건이 발발했고, 이후 군사 정세는 가파르게 전개되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은 남쪽이 서해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표명하고 대북 심리전을 강행하는 등 군사 조처를 발표하자 더욱 강화된 군사대비 태세를 도모했다. 백령도 북방 50km 지점의 북한 해안에 공기부양정 기지를 건설하고, 동해와 서해에 각기 3천 명 정도의 인간어뢰부대를 강화했으며, 장사정 및 해안포를 증강 배치했다. 더불어 남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첨단무기를 겨냥해 전파 방해로 위성항법장치(GPS)를 교란시키고, 컴퓨터 해킹 부대도 강화했다. 남쪽이 북에 위협이 되는 해상훈련을 실시할 경우 이를 응징한다는 차원에서 그해 8월에는 백령도와 연평도 NLL 인근으로 해상 사격훈련을 했다. 이어 9월에는 개성 부근에서 강력한 방해전파를 방사해 서해 영종도 공항과 해군에 혼란을 도모했다.

2009년부터 서북 해역에서의 위기는 숨가쁘게 고조돼왔고, 천안함 사건을 변곡점으로 하여 남과 북은 결전을 도모해왔다. 서북 해역에서 교전할 때 가용할 수 있는 치명적 공격무기가 증강됨으로써 향후 또 다른 충돌의 위험성은 급격히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는 남북 양쪽의 정치권력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위기관리를 할 수 있었던 데 반해 이제는 그마저 어렵게 되었다. 새로운 분쟁 양상이 경고 없이 빠른 템포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정치권력이 일일이 작전을 통제하기 어려워졌다. 즉, ‘문민통제’(Civil Control)에 기반한 국가 위기관리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1962년에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에 비견된다.

‘문민통제’에 의한 관리 어려워져

쿠바의 해안에 전략미사일이 배치됐을 때 이를 정찰하던 미군의 U2 정찰기가 격추돼 미국과 소련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때 미 해군은 백악관의 의도와는 달리 “해상에서의 작전은 해군 소관”이라며 ‘표준운영절차’(SOP)대로 작전을 강행하려 했다. 이를 백악관의 지침을 받은 맥나마라 국방차관이 저지하면서 가까스로 전쟁의 위기를 벗어난다. 확고하게 문민통제를 관철한 성공적 위기관리였다. 우리의 경우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무능함을 드러낸 청와대는 ‘단호한 대응’의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앞으로 또 다른 충돌이 발생하면 우리는 단호하게 대응하려는 군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청와대와 국방부가 과연 현장 지휘관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민통제의 기제가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현장 지휘관의 전투 의지가 고양되다 보니 남북관계를 마치 군이 주도하는 것처럼 국면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국방은 강력하게 준비하는 것이 당연할지라도 외교는 유연해야 한다. 그런데 남북대화도 군이 주도하고, 대유엔 외교도 군이 주도하고, 국방도 군이 하다 보니 우리 외교부와 통일부는 위기관리에서 역할이 거의 없어졌다. 북과 협상하는 당사자는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 즉 외교부와 통일부여야 하는데 이 부처들은 국방에 종속된 것처럼 움직였다. 이 역시 문민통제가 약화된 결과다.

벼랑 끝에서 내려올 의지 있는가

이런 위기관리 구조에서 만일 북한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경우 그 벼랑 옆에 있는 완만한 언덕으로 북한을 이동시킬 수단이 없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는 흐루쇼프와의 막후협상에 정치인을 투입했는데, 우리의 경우 대통령은 오직 군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도 북한이 이끄는 대로 같이 벼랑 끝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위험한 구조가 방치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거치면서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문제에 봉착했다. 동맹국인 미국이 천안함 사건을 중국을 견제하는 데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5월 24일 정부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북 조처를 발표하면서 미국과 서해에서 연합군사훈련을 한다고 공언했다. 이후 7월부터 미국은 서해에 항모 조지워싱턴호를 전개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때부터 중국은 자신의 연안도시를 위협할 수 있는 항모 전개에 극렬하게 반발했다. 미-중 간에 항모 전개를 둘러싼 설전이 오가는 과정에서 서해는 자연스럽게 ‘국제분쟁’의 바다로 돌변했다. 미-중 관계가 악화되자 한-중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쳤고, 이제 서해는 미-중 간의 패권이 경쟁하는 바다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때 서해가 남북 간에 공동어로구역과 평화공원 조성이 논의되는 평화와 번영의 바다로 인식됐던 데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모든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를 막는 요인은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려야 한다’는 군사 논리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임없이 연장하면서 분쟁의 지속적 구조를 창출하는 남과 북의 군사주의는 지난 20여 년간 남북대화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북한은 또다시 ‘서울 불바다’를 거론하고 있고, 우리는 북한의 급변 사태에 개입하겠다는 ‘작계 5029’를 내세우고 있다. 과거 ‘냉전의 추억’이 현실이 된 지금 합리적 이성과 관용의 정신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글•김종대
군사·국방 정책 전문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작성일자 : 2011년 0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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